마한에서 신라와 가야의 원형인 진한과 변한이 갈라져 나왔고 백제 역시 마한에서 땅을 얻어 세워진 나라이다. 곧 마한은 백제는 물론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부에 있는 고대국가의 뿌리인 셈이다. 따라서 마한사가 한국 고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백제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가야사와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특히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진흥과 관련하여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 마한사 연구는 전남도와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기본계획이 수립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짜깁기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좀더 거시적인 접근과 함께 미시적인 연구도 함께 진행되지 않
미군의 옷을 갈아입은 일본 통치물론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전술 한바와 같이 일본총독부에서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을 고문으로, 실무자들의 업무지속, 일본인들에 의해 작성된 350권에 달하는 비망록, 한국인 관리들의 임명에 대한 일본인의 추천권 등은 ‘미군의 옷을 갈아입은 일본의 통치’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미국의 대한 정책은 민족의 자주세력을 억누르고 우파정권을 수립했다는 주장과 남한 내의 친공 세력을 분쇄하고 냉전의 최전선으로서 반공정권을 수립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으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할 것이다.조선총독 아베 노부유기는 일본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한반도 내에 있는 자국민의 안전귀환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치안권을 맡아줄 인사로 항복 선언 며칠 전부터 송진
지난 호에 백제가 ‘사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반면, 마한남부 연맹은 ‘매’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매를 신의 화신 또는 최초 샤만의 조상 등으로 인식되었던 시베리아 샤머니즘이 마한지역에 유포되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시사적이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원류에 해당하는 예맥족의 새, 사슴에 대한 신앙이 지역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부여·고구려 등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는 사슴과 관련 언급이 빈출되고 있는데, 백제가 사슴을 희생으로 삼고 ‘부여’ 명칭이 사슴을 나타내는 퉁구스어인 ‘buyu’와 같다는 점에서 백제가 부여계통이 주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반면, 신라나 마한남부 연맹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진한-계림·닭, 마한-매 등 새와 관계있는 언급이
들어가는 말한반도가 올해로 일본의 사슬에서 벗어난 지 73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슬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일제는 물러갔으나 미국과 소련의 세계정책으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점령군의 자격으로 이 땅에 진주했다.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항일투쟁을 해오던 우리 민족은 미·소에 의해 적대세력으로 돌변하여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미군정을 거치면서 남한에 혼란은 가중되었고 남북한이 단독정부를 수립을 함으로써 6ㆍ25한국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는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의 오판에 의해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고 말았다.이러한 한국사의 비극은 영암을 비켜가지 못했다. 해방직후 영암
최근 영암을 소개하는 방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15일(금) 오후 6시 30분에 방영되는 KBS-2TV ‘생생정보’에서 월출산 구정봉 큰바위얼굴이 소개된데 이어 지난 9일(목) 오후 7시 35분에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영암의 여름 보양식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국내외 산을 소개하는 KBS-2TV ‘영상앨범 산, 월출산 국립공원’이 2월 18일(일) 오전 8시 전국에 방영되기도 했다.최근 인기 탤런트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소개된 영암의 ‘보양 밥상’은 먹을거리가 빈약하다고 말하는 영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관광시대, 사라져 가는 옛 전통 영암의 ‘먹거리’를 찾아 더욱 계승 발전
‘마한의 심장, 영암’을 슬로건으로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영산강유역의 마한사 연구현황과 과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본란을 통해 누차 이야기 한 영암이 ‘마한의 심장’이라는 표현을 다시 강조하였다.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려 있었던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국보 231호 ‘용범’ 즉 ‘거푸집’, 다시말해, 한반도에 독자적인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인 이 유물이 우리 영암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영암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확실히 해준다고 하였다. 영암지역이 영산 지중해의 거점항구 역할을 하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 것은, 옹관고분 중심의 영산강유역에 독창적인 석실분과 분주토기 등을 도입한 시종 옥야리 고분 등을 통해 충분히
얼마 전, 지난 4월 익산에 있는 백제 무왕의 부부 왕릉이라고 알려져 있는 쌍릉의 대왕릉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이 남성 유골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자, 그곳에서 180m 떨어져 있는 소왕릉은 왕비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무왕 부부의 무덤이 보다 확실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서동요는 삼국유사에 실린 무왕의 혼인 설화이다. 동성왕 때 신라와 혼인 동맹한 것을 언급한 것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던 1980년대, 무왕의 혼인과 관련된 사실이라고 당돌하게 주장하였던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왕은 출생 설화가 여럿이고, 한미한 출신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몰락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는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한 이후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길 떠난 소녀 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가슴을 적시는 서정성 짙은 가사“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로 시작되는 ‘숨어 우는 바람소리’는 영암천(덕진천)의 드넓은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 노래다. 1993년도 김지평 작사, 김민우 작곡, 이정옥 노래로 발표되었으며,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해 5월 MBC 예술단 제작, 서울음반으로 발매된 ‘숨어 우는 바람소리’는 때마침 컴퓨터가 대
우리지역 마한사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태에서 필자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격려는 많은 힘이 되어 주고 있다. 필자는 그때마다 영암이 ‘마한의 심장’이었음을 힘주어 말한다. 비록 영세한 기록과 충분치 않은 발굴조사를 토대로 어떤 특질을 찾아내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를 밝혀내는 것이 필자의 소명이라 생각한다.영암지역은 구석기 유적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가히 ‘역사의 보물창고’라 할만 하다. 영암지역의 선사유적 및 유물에 대한 보고사례는, 1960년 시종면 신연리에서 동모·동제검파두식이 발견된 것이 최초가 아닌가 한다. 그 뒤 영암출토 동검·동모가 소개되었고, 시종면 월송리에서 타제석부·유구석부·마제석촉 등의 석기류와 무문토기·격자문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그래도 우리는 곱게 그려야 해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김지평의 가요인생 ‘모종밭’은 고향1984년 10월 27일 아세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된 ‘인생은 미완성’이다. 가수 이진관이 불러 크게 히트한 이 노래 역시 덕진출신 작사가 김지평 씨의 노랫말로, 이듬해인 1985년 KBS가요대상 가요부문 작사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6년 가톨
지난 주 LPGA사상 최저타 신기록을 세워 세계 여자골프계 역사를 새로 쓴 신북출신 향우자녀 김세영을 보며, “왜 하필 영암 출신일까”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말하자면 마한의 심장 구실을 하며 일찍부터 개방된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 지역의 정체성이 내재화되어 김세영 같은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지난 주말 월출산 기찬랜드 개장행사에 잠깐 다녀왔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외지인들이 눈에 띄어 보기 좋았다. 아무쪼록 ‘2018영암방문의 해’가 성공리에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조상숭배 사상과 복장 풍습유명한 문화 인류학자인 말리노브스키(Malinovsky)는 유족들이 사자(死者)에 대해서 품는 정서 반응에는 사자에 대한 애정과 시체에 대한 공포의 모순된 정서가 병
영암신문은 지난 6월 29일 본사에서 독자위원 6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8년 제1차 독자위원회를 개최했다.양인(영암문화관광해설사. 전 고교 수석교사), 박기주(전문의용소방대장), 전의홍(영암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부위원장), 전성원(왕인문해교육사), 김영민(다문화학습코디 영어강사), 오미경(영암문화원)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영암신문 지면개선 방안과 지역사회 이슈에 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문배근 발행인은 인사말에서 “신문을 발행하는데 있어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신문사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어 독자위원 여러분들이 느꼈거나 주위의 여론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달라”면서 “신문제작과 편집방향에 지역민과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독자위원회이니 만큼 더 좋은 풀뿌리신문이 될 수 있
분묘에는 그 의식(儀式)의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직접적인 잔존물 또는 상장의례와 관련된 의식의 진행과정과 진행방법 등을 살필 수 있는 흔적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모여 고대의 상장의례를 복원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하겠다. 장례의식은 그 사회의 성격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에 해당하므로, 내친 김에 마한 시대 지역의 장례의식을 더듬어 보기로 하겠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타난 기록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마한은 “장례를 치를 때 곽(槨)은 있으나 관(棺)은 없다. 우마(牛馬)를 탈 줄 모르고 장례를 치를 때에만 우마를 쓴다(其葬有槨無棺 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라 하였는데, 이는 마한의 장례와 관련된 거의 유일한 기록임에 분명하다. 마한 사람들이 소
토착적 농경문화와 외래문화가결합되어 독특한 정체성이 확립되다독자적 영산지중해 문화를 성립시키다최근 모 지자체에서 ‘호남의 중심지 OO’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며, 필자가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바이지만, ‘마한의 심장’ 역할을 한 영암이야말로 이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며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역사학과 매칭을 시켜 스톨리텔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지난 호에서 분구를 축조할 때 나무기둥을 세워 석실 벽을 축조한 양식과 토괴를 이용하여 방사선상 및 동심원상으로 구획한 후에 성토를 하는 거미줄 형태의 분할성토 방식이 영산강 유역에서 유독 옥야리 방대형 고분에서 보인다는 것을 언급한 바
외래문화와 전통문화의 조화필자는 본란을 통해 ‘영산강식 토기’와 마한남부 연맹의 문화적 특질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루며, ‘영산강식 석실’의 원형을 옥야리 방대형 고분(1호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2018년 5월 11일자) 즉, 4세기 중엽에 조성된 옥야리 장동 고분의 석실분이 5세기 중엽에 조성된 나주 다시면 가흥리 고분, 복암리 정촌 고분을 거쳐 ‘아파트형 고분’을 유명한 복암리 3호분의 석실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백제보다는 왜 및 가야 계통과 관련성이 깊다고 살폈었다.이와 같이 최근들어 영산강유역에서 새로운 방식의 고분 축조기술로 만들어진 고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고분들은 영산강유역의 마
마한시대 영산강유역 ‘빈장’ 장례2012년 서울 도봉산 자락에 있었던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중 금강령과 금강저 등 고려시대 불교용구 79점이 나온데 이어, 2017년 도봉서원 터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 과정에서 지금껏 탁본으로만 전해져오던 ‘도봉산영국사혜거국사비’의 일부가 발견되어 학계를 흥분시켰다. 말하자면 고려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번성했던 영국사가 고려말 어느 시점에 이르러 쇠락해졌고, 터만 남은 그곳에 15세기 초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후원하여 잠깐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16중엽 폐사되고, 그곳에 1573년 도봉서원이 세워졌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도봉서원의 발굴과정에서 전혀 몰랐던 영국사의 정확한 위치가 드러나면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현전하는 중요한 유적지에 그
‘다시들’에 ‘불미국’ 왕국이 있었다최근 경남 함안에서 아라가야 시기의 유적이 출토되고, 공주에서 무령왕릉과 같은 구조인 벽돌무덤이 발견되는 등 은둔의 역사적 사실들이 살포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된 시종 내동리 쌍무덤에서 마한의 심장이었던 고대 영암지역의 실체를 밝힐 많은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다시들’의 가흥리, 정촌, 복암리 등에 분포한 대규모 고분들의 면모를 통해 큰 정치체가 있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금송을 묘제에 이용하고, 금동신발을 착용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마한 대국의 하나였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영산강을 마주하고 있는 반남과 다시들 지역에 별개의 연맹왕국이 일찍부터 성립되어 있었다. 이들은 규모나 발전의 순위에서 약간의 차
복암리 세력은 풍부한 농산물을 바탕으로 내륙 및 백제, 왜, 가야, 심지어 중국과 중개무역을 통해 세력을 키워갔다. 정촌 고분의 피장자가 백제 무령왕릉과 익산 쌍릉 등 왕릉에 사용된 고급수입 목재인 금송(金松)을 이용하였고, 유려한 곡선의 용머리 장식을 한 금동신발을 신은 채 묻힌 사실은, 이 지역 연맹장임을 분명히 한다. 역시 금동신발이 출토된 복암리 3호분 피장자의 신분 또한 연맹체의 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말하자면 당시 ‘다시들’ 지역에는 이들 두 세력이 병립하여 있을 정도로 커다란 정치체가 형성되어 있었다.영암 시종, 나주 반남, 다시들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수많은 거대 고분들은 이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있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 공주, 부여 지역에서는 이러한 대
묘제를 통해 시대적 특성 찾아엊그제 5월 25일, 필자는 금정면 신유토마을에서 ‘마한의 심장, 영암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기회를 얻었다. 본보 연재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한 영산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마한 연맹체의 심장부가 현재의 영암지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남다른 영암 인사들의 자긍심과 정체성이 고대 마한에서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이날 행사에는 마한역사의 뿌리를 찾기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있는 유인학 위원장을 비롯하여 장흥군수, 영암군수 등 영암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뜨거운 관심과 함께 필자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삼국시대가 아닌 가야사·마한사까지 포함된 ‘5국 시대’의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쓸 날이 곧 다가오리라 확
얼마 전 경상도 쪽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고등학교 친구가 필자의 글을 읽은 소감을 메일로 보내왔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 본다. “오랫동안 잊혀지고, 버려진 역사 그 많은 고분들이 널려 있었지만, 가야와 함께 빛을 보지 못했던 유적과 지역의 역사…근대에 와서는 왜인들이 임나일본부 등의 낭설을 전파시키면서 그 연결고리가 되는 유물이 나와 행여 전라도 해안이나 가야의 역사가 일본의 전진기지임을 증명하는 근거라도 나올까 걱정한 나머지, 한국인들에 의해조차 더욱 무시된 것은 아닌지?…이름하여 5천 년 역사인데, 사라진 고조선 3천 년 역사를 되살려야 하고, 남은 2천 년도 마한, 진한, 변한을 중심으로 복원해야 진정한 한국사가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용이었다.시간이 날 때마다 부산 복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