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사전 금품 수수설을 폭로하는 낭산 선생의 국회연설 장면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시절 자유민주당 대표최고위원(당수)이자 국방위원으로 활동했던 낭산은 국방부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하다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낭산 김준연씨를 축하하기 위해 김해김씨 중앙종친회의 임원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맨 오른쪽이 낭산이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시절, 헌법기초위원으로 참여했던 낭산 선생은 대통령 중심제의 대한민국 헌법을 직접 초안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앞줄 좌로부터 두 번째가 낭산 선생.
영암이 낳은 근세 최대의 지도자, 낭산 김준연(1895~1971)선생의 동경 유학시절 모습(사진 오른쪽). 동경 제국대학을 나와 제헌 3~6의원과 헌법 기초위원, 법무장관을 지낸 ‘건국의 원훈’으로 추앙받고 있다. 한편 영암군은 낭산 김준연 생가복원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초창기 마을회관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했던 군서고등공민학교 학생들은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배구코트도 만들고 농구대도 세워 체육활동이 활발했다. 1954년 8월에는 영암군 배구대회에서 영암농고를 물리치고 우승한 적도 있었다. 사진은 당시 배구대회 우승기념 사진.
1951년 3월 죽정마을회관에서 최대원·최재형 선생 등의 노력으로 문을 연 군서고등공민학교는 6·25전쟁의 어수선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1954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당시 뜻을 모아 발벗고 나선 군서고등공민학교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월출산은 다른 산맥과 격리된 지형조건으로 생물서식 환경이 불리함에도 식물 약 700종, 동물 약 800종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온대림과 난대림이 겹쳐지는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어 학술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고고한 자태로 피어있는 원추리꽃의 자태가 월출산의 위용만큼이나 당당하면서 아름답다. /편집위원=박철
1970년 영암읍 개신리에서 바라다 본 눈 덮인 겨울 월출산의 모습이 마치 달밤에 보는 월출산의 모습과 흡사하다. 보름달이 뜨는 날, 야간산행을 하면 달빛에 비춰진 바위산이 마치 은쟁반처럼 반짝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무박2일의 월출산 산행을 즐겨 찾는 산악인들이 부쩍 늘었다.
1970년 월출산 자락인 영암읍 용흥리 뒷산 두름봉에서 바라본 영암읍 용흥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영암읍 전경. 예전 저수지 자리에는 영암김병원이 들어섰고, 멀리 들판을 가로질러우회도로가 생겼다.
마을회관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했던 군서고등공민학교 학생들은 교과서가 없어 국어·영어·수학 등 필수과목은 선배로부터 헌책을 물려받아 사용했으며 선생님들이 칠판에 적은 글을 공책에 베껴 교과서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1951년 3월 죽정마을회관에서 최대원·최재형 선생의 노력으로 학생 13명을 모집하여 문을 연 군서고등공민학교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1954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