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아시내 뒷동산에서 바라보는 은적산 노을은 곱기가 그만이었다. 은적산의 곱디고운 노을은 학파 저수지에 반사되어 붉게 타올랐고 가끔씩은 저승으로 가는 길 같아 무서웠다. 해가 짧은 겨울 상은적봉에 노을이 생길 즈음 학파 저수지 은적산 쪽에서, 종일 땔감을 해 머리에 이고 줄지어 오는 그 많은 아낙네들의 모습은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몸뎅이보다도 더 커다란 땔감둥치를 머리에 이고 걷는지 뛰는지 춤추듯 걸어오는 한줄기 여인들의 모습은 은적산 노을을 배경으로 차라리 눈물이었다. 은적산은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와 학산면 신덕
우리는 자신이나 집단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나 홀로 피켓을 들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이나 다중이 밀집된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확성기를 이용한 소음으로 주변 상가 등에 영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다.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2조 제1호에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신토불이 경제학-밥상 경제학21세기형 성장을 전제로 한 문명은 지하자원을 공짜로 무제한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무자비하게 낭비해 왔다. 이처럼 고도의 문명사회를 에너지와 자원의 대량소비를 전제한 사상누각과 같은 문명인 셈이다. 에너지 자원의 대량소비는 CO2의 대량배출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고 지구온난화에 박차를 가하고 이상기후를 초래하고 있고, 경제성장은커녕 인류문명의 종말과 파멸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파괴해야 한다. 파괴한 것은 다시 제작 가능한 생산시스템 즉 파괴한 것을 재활용하는 순환형 사회를 만들지
지속가능한 농업과 인류의 식량 확보, 인간의 삶의 질 향상과 생태계 보전 등으로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기농 생태마을의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움직임은 미미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작지만 가장 위대한 농촌운동이다. 고향 마을 앞을 흐르는 망월천 주변의 유기농 생태마을 조성은 우리들의 추억을 되돌려 주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국가를 살리는 농업의 방향임은 물론 바로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논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우등생인류는 작물을 심고 길러서 식량을 생산하고 인류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매년 다양한 사고와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화재는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재난 중 하나다.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 뿐만 아니라 재산 피해 역시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 따라서 화재 예방은 우리 모두에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불조심 강조의 달’은 우리에게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화재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재차 독려하는 기간이다. 이 달을 통해 우리는 화재 예방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불조심 강조의 달을 맞아 화재 예방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점
길을 걸었다단풍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친구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가을 햇빛 속에서 오늘 하루는 세상을 잊고단풍 속에 살다가어린 시절 한때 그 추억 속에 함께 걸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저 꽉찬 도시도 멀리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다가정든 친구가 산다는 하남 그 집도 찾아보았다 오늘은 세상 같은 건 치사하기도 해서 시끄럽기도 해서담지 않기로 하고인조의 생고집도 산성 성곽에 부는 바람결에 던져버리고 오늘 하루육탈한 수세미정갈한 모시 저고리로갈아입고 나도 빨갛고 노랗게 살고 싶다저렇게 말없이 수다도 떨면서 은행 나뭇잎 노랗
경찰에서는 재난이 발생하면 전 직원을 동원하고 재난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재산에는 개인적인 재산도 있지만 자연경관도 꼭 지켜야 할 우리의 재산이다. 우리 지역은 수려한 월출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등반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아깝지 않은 너무도 아름답고 웅장한 월출산을 산불이라는 재난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불씨가 산으로 옮겨 붙으면 우리들의 불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월출산 주변에 인가
나는 거의 매일 영산강을 느끼며 산다. 남악에서부터 영산강을 보고, 영산강 지류 서호강물을 퍼 채소를 가꾸고, 영산강으로 흘러가는 물을 막아 만든 더부내 정수장 수돗물을 마신다. 영산강은 내 생활이고 내 삶이다. 영산강은 담양 병풍산 북쪽 용흥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도 땅 삼백오십 리를 흐른다. 영산강 유역은 자그마치 백만 평에 이른다. 영산강의 좁고 넓은 물굽이는 한 마리 큰 구렁이가 되어 이리저리 산비탈과 들을 감고 돈다. 영산강은 남도 땅 젖줄이고 남도 땅에서 삶을 이어가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후삼국 시대 견훤은 영산강을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태어난 고향도 아니고 거주하는 지역도 아니지만 애착심을 갖고 있는 지역에 기부로 응원하는 제도다. 이를 홍보하고 답례품을 고기와 소주로 특화해서 시의 이름과 매력을 전국에 발신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기부금액에 따라 보내는 답례품은 지역의 식료품이나 공예품(대궁, 목검, 도자기 등)을 조달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그래서 보내주신 기부금을 지정된 목적에 부합하게 투자함으로써 기부자의 응원에 보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부자에 보내는 답례품은 지역에서 조달된 고기와 소주를 주 상품으로 하고 총 380종
일본의 농업신용보증기관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1980년 처음으로 만난 이노우에스미다다(井上純忠) 씨의 고향, 미야사키(宮崎) 현(縣) 미야코노죠(都城)를 방문한 적이 있다. 모처럼의 귀향길에 그의 부모산소를 함께 참석하고 의사인 그의 형 저녁 식사 대접도 받았다. 그는 자기 선친이 미야사키 현 영주의 주치의이며 보신탕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지역에서는 닭고기 육회도 먹는 식습관이 있다. 그가 한국에 오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김포공항 근처에서 보신탕을 먹으면서도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뱃부시 파스토랄호텔의
지난 7월 3일, 특허청에 등록하여 소유하고 있던 큰바위얼굴 상표권을 영암군에 무상 양도한 이후 군민과 향우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사실, 2012년 큰바위얼굴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게 된 계기는 그동안 나의 활동을 지켜본 지인들의 권고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뜻을 펼친다고 해도 누군가 큰바위얼굴에 대한 특허권을 먼저 취득하고 제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상표등록을 했다.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과 처음 월출산을 오르면서부터 월출산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월출산을 알
조귀순 여사는 아시내에서 불쌍하게 살다간 여인이다. 청상과부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살림살이에서도 삼 형제를 잘 길러낸 전설 같은 얘기의 주인공이다. 나로서는 집안의 형수뻘이라 그런지 조 여사의 귀천이 가슴 아팠다. 이대로 보낼 수만은 없어 인터넷 비(碑)라도 세워주자는 심정으로 조 여사에 관한 글을 썼다. 블로그에 올리고 신문에 내려고 썼는데, 한 인생에 관한 글이다 보니 아들들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아 막내아들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초안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응답이 왔는데 조 여사가 장한 어버이상도 탄 적이 있다며
어려서는 산골정 한가운데 있는 공동 우물을 이용했다. 문산양반은 물을 깃는 것이 일과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문산댁은 빨래는 빨래터에서 하였지만 길어온 물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였다. 초가집에 전기가 들어오자 문산양반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에 우물을 팠다.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물이 나올 때까지 아주 깊게 팠다. 밑부분은 돌로 석축을 쌓고 윗부분은 시멘트 노깡을 올렸다. 우리 집 우물은 가뭄에는 우물이 말랐고, 비가 오면 함께 우물이 넘쳤다.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아도 거품이 나지 않았고 빨랫비누로 빨래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정표로 그려준 조선후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국보 제180호이다. 지우들은 역적으로 몰린 추사와 멀리했고, 사랑하는 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위리안치 추사에게 청나라 귀한 서적을 구해다 주고 추사의 소식을 한양과 청나라 지인들에게 전해주는 제자 이상적은 추사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 고마움을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우선시상이라 쓰고서 주었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청나라에 가서 청나라문인 16명, 조선문인 3명에게서 제찬을 받았다. 청나라 학자 조무견의 제찬을 소개한다.세한도는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아시내에는 역사와 신화의 경계에 있는 한석봉 어머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난 사자가 돌을 깨뜨리는 것 같고 목마른 천리마가 내달리는 것 같다’는 붓글씨를 쓴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천 포구가 있는 아시내에서 떡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사실 내 유년 시절만 하더라도 아천 포구는 실체가 있었다. 집도 몇 가호 정도 있었고 여름이면 거의 매일 미역을 감던 아천포에는 배를 묶어두었다는 나무 말뚝이 물속에 많이 박혀있었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이 1814년에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나주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삭힌 홍어’의 유래는 고려 시대 영산현에 속했던 흑산도 사람들의 내륙이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 때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해 고려조정은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모두 뭍으로 강제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을 시행하여 서해안 일대 섬 주민들은 모두 뭍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때 흑산도는 당시 연산현에 속했는데 서해 바다로 이어지는 강을 거슬러 올라와 터전을 잡았고, 새로 터를 잡은 곳의 강을 영강 혹
필자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진료를 받았다. 필자가 입원한 질병과는 상관없이 대장암의 감염 여부를 알기 위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라고 했다.그동안 30대부터 70대 중반까지 10여 차례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다. 이때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장을 비우기 위해 밤새도록 약물을 마셔야 하는 고통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누구나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 그러나 걱정이 앞서는 검사가 바로 대장내시경 이다. 검사 전날 밤 4리터가 넘는 약물을 밤새도록 5~6차례 억지로 마시고 설사를 반복하는 일을
일본은 최근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고 과소화가 심각한 상태다. 기간산업인 농업의 쇠퇴와 함께 지역경제도 쇠퇴하고 고용률도 줄어서 젊은이들 대부분이 지역 외에서 직업을 찾아 나가고 있다. 고령 가족세대의 증가와 함께 농업을 포기하는 세대와 경작 포기지가 증가해서 마을 공동체적인 상호협력 활동의 저하와 생활필수품 구입이 어렵고 농산촌 지역의 생활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머지않아 지역소멸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령화율은 34%에서 45%가 되어 두 사람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이런 농촌환경 속에서
지난 7월3일 나주 동신대학교 뒤에 소재한 정렬사(旌烈祠)을 찾았다. 이날은 문열공(文烈公) 김천일 선생 창의 431주년 추모 제향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창의사(倡義使) 칭호와 순절하신 이후 문열(文烈)이라는 시호를 받으신 선생의 호국충절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제향에 500여 명이 참석했다.선생은 1537년 1월 10일 나주 흥룡동에서 출생하여 1573년(36세) 공직을 시작하여 임실 현감, 강원·경상도 도사, 순창군수, 담양·수원 부사, 한성부 서윤, 군자 감정을 지냈다. 선생은 1592
장마로 아시내가 사방이 우중충하다. 우태가 자욱해 금방이라도 또 비가 올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질척거려 딱히 할 일이 없다. 풀을 뽑기도 예초를 하기도 마땅찮아 대비를 들고 뒷동산으로 향한다. 무궁화가 군데군데 피기 시작하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동산 길 마지막까지 올라 내려가면서 비질을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길에 물기가 있어 잘 쓸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천천히 비질을 한다. 비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무료해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길은 동네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길이 아니다. 인적도 드물고 잘 보이지도 않아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