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8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바닷물이 상대포까지 밀려 들어왔고 구림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1,200여 년 전 주지봉 아래 성기동 최씨원에서 도선국사가 태어나 숱한 전설과 일화를 남긴 후 이 마을은 ‘쌍와촌’에서 ‘구림(鳩林)’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 중심에 국사암이 있다. 국사암을 중심으로 남송정, 북송정, 동계리, 서호정 마을이 자리한다. 국사암은 영암도기박물관 정문에서 북쪽으로 약 100여 m 거리에 있다. 낭주최씨 문각인 덕성당과 고려태사 민휴공 최지몽 선생을 모신 사당 ‘국암사’가 바로 곁에 있다. 구림마을을 방문한
3. 영암 근·현대사의 오류사례영국의 역사학자 E·H Carr(1892-1982)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하면서, 역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E·H Carr가 정의하고 부연한 것처럼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여기에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그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암에 내려오는 잘못된 오류의 역사를
세월 따라 상전벽해가 되다지도를 보면 바닷물이 월출산 기슭 아래까지 깊숙이 밀려 들어와 철썩거렸음을 알 수 있다. 영암읍과 덕진면 영보리도 바닷가 마을이었다. 삼국시대를 지나면서 마을 주변 갯벌은 조금씩 조금씩 간척사업을 통하여 논으로 변해갔다. 구림마을 주변 역시 세월을 거치면서 상전벽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서호 입구에는 남해와 서해로 이어지는 번창한 포구였던 상대포가 있었고, 주지봉 아래에는 도선국사 탄생지인 성기동 최씨원과 조암(빨래터)이 자리했다. 1657년 태호공 조행립에 의해서 성기동에 세워진 성기서재는 1684년에
1. 머리말천년의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온 영암! 월출산과 함께 신라말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찬연(燦然)한 영암! 영암이 어떤 세운(世運)이 몰아치기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소멸지역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영암인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영암의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풍부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있다. 이것이 영암의 난제를 풀어가는 밑천이요 자본이다.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가지고 개혁을 뛰어넘어 혁신의 자세로 임해
고증을 통한 역사 재조명 필요필자는 구림마을과 도선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애독자들로부터 여러 통의 격려 전화를 받았다. 도선국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신문 지면을 통하여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며 구림마을과 주변에 산재해 있는 도선국사 관련 유·무형의 역사·문화 유물과 유적들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특히 박이화의 내용과 편 ‘도선의 마을, 구림 – 도선국사 관련 5대 유적지 개관’ 글을 보고 구림마을을 보는 눈과 생각이 확 넓어졌다는 의견이 많았
▲청년이 꿈을 이루는 ‘청년활력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영암군이 그리는 청년활력도시의 기초는 좋은 일자리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청년이 좋은 일자리에서 꿈을 이루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어야 청년활력도시는 지속가능합니다. 지난해 영암군은 군 자체 역량만으로 ‘일자리 박람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지역 안팎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들의 큰 관심과 호응 속에 일자리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는 청년 일자리의 폭을 더욱 넓혀가겠습니다. ‘일자리 카페
국사가 놀던 바위 몇백 년 자취인가십 리 연파 서호강이 눈썹같이 둘렀는데쌍룡이 구슬 물고 수구를 잘랐으니경치도 좋거니와 살만도 하겠구나옛 이름 쌍와촌은 돌을 보니 분명하다뒤에 이른 구림촌은 비둘기의 숲이라네국사가 놀던 바위 몇백 년 자취인가‘도선체험 탐방길’ 서둘러 조성해야3번과 5번에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도선국사 탄생설화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유적지인 1번 최씨원, 2번 조암에는 안내판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구림이라는 지명을 탄생시킨 도선국사를 어찌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필자가 본지에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시작한 것은 2017년 7월 7일이었다. 첫 번째 주제는 ‘찬란한 마한의 영광을 찾아’였다. 그로부터 만 6년 6개월(78개월)을 매주 거의 빠짐없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의 마한 실체와 특성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필자는 오늘도 장흥고등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과 역사학’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다.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상상력과 분석력, 사고력이 길러져 우리에게 부족한 식견(통찰력)
▢ 소통하고 상생하는 공감의회제296회 임시회에서 군정 주요 업무계획 청취를 시작으로 제303회 정례회까지 조례안을 비롯해 일반안건, 주요사업 현장방문, 군정 질문답변, 행정사무감사, 예산안, 건의 및 결의안을 심의·의결하는 등 군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특히, 작년에 이어 국내 쌀값이 불안정하고 재고량 증가 및 영농자재비 급상승 등 농촌 경제의 위기감이 크게 고조되는 가운데 쌀 수급 정책 전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농협 및 농업 관련단체와 쌀값 가격안정 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자 회의 개최, 양
▣ 생태관광 일번지로 도약‘대한민국 혁신수도’ ‘청년기회의 도시’ ‘마한의 심장, 달빛생태도시’로 방향을 잡은 영암군은 ‘청년활력’ ‘지역순환경제’ ‘생태문화’ ‘에너지전환’ ‘미래첨단농업’을 혁신 5대 핵심기조로 사람과 자연, 미래가 공존하는 대전환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역사와 문화 선창, 주민 생활과 정주여건 개선,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관광과 교육 활성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첫째, 문화재청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해 ‘마한의 심장, 영암’을 널리 알렸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는 영
목마른 말 물 마시니 조암(槽岩)이 뚜렷하다“관음사 폭포수에 동지섣달 외가 솟아빨래하는 아이 계집 자식 배기 기이하다신인이 탄생하니 승명은 도선이라지리를 통달하여 산맥을 살펴보니도갑산이 주산이요 은적산이 안산이라북두칠성 본뜬 바위 북현무를 둘러 있고고산으로 쌓은 재는 남주작이 되었도다봉황이 알 품으니 황산이 높이 나고목마른 말 물 마시니 조암(槽岩)이 뚜렷하다” 한편 조선 숙종 때 ‘관명승진’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강직한 선비 이관명은 구림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조암을 답사한 후 도선국사를 추모하는 시
지난 호에 유산의 비교연구를 통해 유산 가치의 보편성과 독창성을 알 수 있다ㅍ고 언급했다. 유산의 보편성과 독창성도 더불어 완전성 요건도 충족되어야 한다. 완전성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포함되었는지, 유산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특징과 과정이 완벽하게 구현될 만큼 충분한 규모인지, 마지막으로 개발 및 방치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것인지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임경희 연구관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기로 한다.최근의 세계유산 등재 추세 문화유산은 그 유산의 물리적 구조 및 중요한 특징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봉황이 알 품으니 황산이 높이 나고호남의 명승지는 낭서가 제일이라바위가 신령하니 읍 이름을 영암이라월출산 억만 장이 하늘에 솟아올라천황봉이 서남하고 주지봉이 남서하니구름기운 양양하고 산세는 빼어나다그 아래 열두 마을 명승지 되었도다마을 터는 뉘 정하고 마을 이름 뉘 일렀나관음사 폭포수에 동지섣달 외가 솟아빨래하는 아이 계집자식 배기 기이하다신인이 탄생하니 승명은 도선이라지리를 통달하여 산맥을 살펴보니도갑산이 주산이요 은적산이 안산이라북두칠성 본뜬 바위 북현무를 둘러 있고고산으로 쌓은 재는 남주작이 되었도다봉황이 알 품으니 황산이 높
강의실서 만난 낭주고 학생들지난 12일(화) 미암 낭주고등학교에서 ‘동아시아 고대 해양문명의 허브, 영암’을 주제로 2시간 특강을 하였다. 낭주고등학교는 고려시대 영암의 행정구역 명칭인 낭주를 교명으로 쓰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의 정체성이 유난히 교명에 나타나 있다. 게다가 낭주고등학교가 위치한 독천은 영산 내해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일찍부터 대륙과 해양문화가 교차하여 새로운 문화창조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교과서에 실렸던 (전) 영암출토 거푸집 유물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도 우연이
도선국사 탄생지 앞에 세워진 안내판“백제의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한 왕인박사가 태어난 성기동 집터이다. 박사는 이곳에서 자라면서 꾸준히 학문을 연마하여 유가의 성현이 되었다. 집터는 북쪽 언덕을 등지고 자리 잡았는데 기단, 주추, 담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집터 오른쪽으로 시내가 흐르고, 시내 중간에 우물로 썼던 성천이 있다. 이 물을 받아 두고 마셨다는 구유바위도 남아 있어 옛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집터 마당바위에는 ‘고최씨원 금조가장(古崔氏園 今曺家庄 옛날에는 최씨정원, 이제는 조씨정원)’이라 새겨진 명문이 있어 눈길을 끈
엊그제 필자가 만난 지석묘 연구의 권위자인 목포대 이영문 교수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마한 유산은 함부로 발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산이 지닌 신비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지난 6일에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과 통화했다. 마한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영암, 나주, 무안, 함평 등의 마한 유산이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어 연속유산의 성격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잠정목록 작성을 서둘러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이 위원장님의 얘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 지난 11월 8일 세미나에서 확인되었다.
둔갑된 도선국사 탄생지 최씨원문수암 터에 세워진 문산재와 미륵불상도 왕인박사 유적지로 조작 날조하더니, 600년 전 세종실록지리지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도선국사 탄생지도 왕인박사 탄생지로 조작 날조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러려니 했으나 ‘왕인 영암 탄생설’에 대한 모든 것이 간악한 한 일본인에 의해 날조된 황당무계한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영암군은 하루빨리 조작 날조된 왕인 흔적을 철거하고 원래 구림마을에 있었던 도선국사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나주 복암리 유적 발굴 의미지난 11월 29일자 중앙과 지방 모든 언론에서 영산강 유역 마한 관련 중요한 뉴스가 소개되었다. 본보 독자들 가운데 이 뉴스를 접한 이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관련 내용을 전재한다.“영산강 유역의 고대 문화 유적지이자 삼국시대 이전 마한의 중심지 중 하나인 전남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백제시대 집터와 인장 기와, 고려시대 명문 기와 등이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마한시대 도랑(환호)시설을 확인한 데 이어 최근 백제시대 주거
구계 박이화(1739~1783)가 18세기 후반에 쓴 에는 구림마을에 대하여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구림마을의 전 이름, 구림마을 지명 유래, 도선국사 탄생 설화, 주변 풍수, 구림마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이름, 마을 곳곳에 있었던 정자 이름, 열두 동네에 대한 언급 등이 그것이다. 본문을 정독하면서 위에 언급된 내용을 차례차례 따라가 보기로 한다.구림촌(鳩林村) 이전의 마을 이름은 쌍와촌(雙蛙村)박이화는 에서 구림마을의 옛 이름이 쌍와촌이었고, 돌(石)에 분명하게 새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지난 11월 8일 영암 기찬랜드 가야금산조 기념관에서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학술 포럼이 있었다. ‘마한의 심장, 영암’은 나주와 더불어 마한 유산의 보고이다. 특히 동아시아 고대 해양 문명의 허브 기능을 한 영암 마한의 역사성은, 나불도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후보지로 결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6일 시종 주민들과 찾은 나불도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 후보지는 영산내해에 연해 있어 역사성과 더불어 장소성 측면에서도 탁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산 내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한 유산은 그 가